[특파원칼럼] 충무공을 조롱한 대통령 / 정남구 | |
외국 군대에 국방을 의존하는 데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국가의 존립에 관련된 일이니 그 값이 결코 싸지 않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본토의 일본인들은 그동안 미국에 의존한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 그 짐은 상당부분 오키나와에 떠넘겨왔다.
지난 30일은 1959년 오키나와 가데나 미군기지의 전투기 추락사고가 난 지 51년을 맞는 날이었다. 당시 사고로 어린이 11명과 주민 6명이 희생됐다. 주민들은 그때 화상을 입고 17년 뒤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또 한명의 희생자 이름을 이날 비석에 추가로 새겨넣으며 또한번 목이 메었다. 그들 오키나와 주민들이 후텐마 기지를 ‘현 바깥’으로 옮기겠다는 민주당의 약속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을지는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사상 다섯번째 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애초 약속이 잘못된 탓은 아니었다.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는 이들과, 오키나와의 부담을 나눠 지고 싶지 않은 오키나와 밖의 일본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사임 연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일본의 평화를 일본인 자신이 지킬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미국에 의존하는 안전보장을 앞으로 50년, 100년 계속 이어가도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토야마가 어떻게든 후텐마 기지를 현외로 옮기려고 했던 이유를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언젠가 여러분의 시대에는 일본의 평화를 일본인 자신의 손으로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자.”
바다 건너, 내 나라의 현실을 본다. 일본은 외국 군대를 국내에 주둔시킬 뿐이나, 우리는 내 나라 군대의 작전권마저 완전하게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한국전쟁 때 유엔군에 넘겼던 작전권을 순차적으로 회수해왔지만 전시작전권만은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한 정상회담에서 2012년 4월로 합의돼 있던 전시작전권 이양시기를 2015년 12월로 3년7개월 미루기로 합의했다. 천안함 사건을 이유로 들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자주국방의 의지를 더욱 가슴에 새기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어지러운 때일수록 더욱 우리가 민족의 장래에 책임감을 갖고 권한을 행사해야 마땅하다. 나는 이 대통령이 4월27일 천안함 희생자 영결식을 앞두고 별안간 충무공의 사당을 찾은 뜻이 거기에 있는 줄 알았다.
임진왜란 때 조선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다. 작전권은 명나라에 넘어갔다. 이순신의 수군도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지휘 아래 들어갔다. 유성룡은 그때의 일을 <징비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진린의 부하들은 임금 앞에서도 우리 수령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때리고 욕하고, 노끈으로 목을 매서 개처럼 끌고 다니기도 했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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