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
중앙일보가 이 나라 문화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으로 보면 여기서 제정 운영되고 있는 서정주 문학상이 우리 문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역시 막중하다. 왜냐면 서정주는 일제 침략전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미화하고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문학적 수사법을 최대로 동원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전문인으로서 서정주 문학상 제정에 참여했을 문인들은 누구이며 서정주에 대한 그들의 이해 수준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다음 몇가지 사항은 반드시 짚어 봐야 한다.
첫째, 서정주는 과연 일제의 억압 때문에 생존을 위해 친일했는가?
둘째, 서정주의 문학과 그의 친일행위는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셋재, 그의 친일은 어느 수준이었는가?
넷재, 그는 80 너머 장수할 때까지 한번이라도 정직하게 사과한 일이 있는가?
다섯째, 5.18 민주항쟁 당시의 학살 주동자를 그 직후 온 국민 앞에서 찬양하고 그의 집권을 도운 반인륜적 행위는 그의 문학정신과는 별개의 것인가?
서정주의 친일을 변호하는 대표적 구실은 문인들에 대한 일제의 억압과 공포분위기다. 그렇지만 서정주의 그것은 이것으로 변호될 수 없다.
일제는 1931년에 70~80명의 문인을 체포하고 다시 34년에 거의 같은 규모의 문인들을 체포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반체제운동단체인 KAPF회원이었다. 서정주는 이 때가지 문인도 아니었고, 순수문학파는 아무도 단속대상이 아니었다.
그후 일제가 총독부 시호바라 학무국장을 통해서 1939년 말경에 조선문인협회를 결성하고 침략전쟁의 나팔부대로 동원한 대표적인 문인들은 이광수 김동환 주요한 박영희 정인섭 유진오등이었으며 친일행위는 대개 이 단체의 서열순위에 따랐다. 부민관 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되고 천황폐하 만세 삼창까지 불렀던 이광수가 다음 달에 사표를 제출하고 다시 회장직을 맡은 것을 보면 그의 친일의 자발성이 어느 정도 의심되기도 하며 이 당시 친일에 대한 일제의 강요를 짐작할 수는 잇다. 그러나 등단 3년생(동아일보등단 기준)인 서정주 같은 무명 신인까지 그렇게 동원을 강요받앗다는 근거는 없다. 그리고 윤동주 이상화 한용운 같은 반항적 문인이 아닌 이상 일제는 어느 문인도 함부로 체포 고문하지 않고 오히려 천황폐하의 적자라며 동화정책을 써 나갔다. 그러므로 억압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친일했다는 변호론자들의 서정주 감싸기는 기만이거나 문학사에 대한 무식의 소치다.
둘째로 문학과 친일은 별개의 것으로 구분되어야한다는 분리론 역시 무식이나 기만적 주장이다. 서정주의 친일은 문학작품으로서의 친일이다. 이광수등이 부민관이나 기타 지역에서 행한 대표적인 친일은 강연에 의한 대중선동이며 그것은 문학과 구별된다. 그렇지만 서정주는 일제에 의하여 강연에 초대될만한 인물도 아니었으며 그의 친일행위는 친일문학이라는 창작활동을 말한다. 시 소설 기타 산문형태로 일제 침략전쟁에 나가 죽도록 외친 대중선동문학이다. 그러므로 친일과 문학을 구분해서 그의 문학은 길이 찬양하자는 주장은 친일행위자체가 곧 문학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소리이거나 아니면 알고도 속이는 기만행위다.
셋째로 그의 친일문학은 가장 반민족적인 것이었다. 일제가 사이판도등에서 몰살되며 패전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이 죽음을 찬양하며 선동을 계속했고, 징병 징용을 선동하는 자리에서는 “거리위엔 허우적거리는 나태하고 게으른 반도의 청년”이라며 우리 민족을 모독하고 개죽음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가장 지속적 자발적 적극적 반민족적 친일문학을 했다.
그는 훗날 자신을 변명하는 과정에서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는 말을 했다. 하늘에 따르고 해에 순종한다는 인생관을 말하며 친일도 그렇게 하늘의 뜻에 따르고 해의 뜻에 따랐을 뿐이라고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종천순일’은 그가 받들던 ‘천황폐하에 따르고 일본에 따른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시는 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언어의 효용가치 범위내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작자와는 다른 해석이 더 공감적일 수도 잇다.
그리고 그런 해석이 아니라 하더라도 광주의 학살자를 극찬하던 그의 문학 정신 역시 하늘의 뜻이고 해의 뜻인 종천순일이었을까?
서정주에 관한한 한국 문인 또는 국민중 적지않은 사람들은 우리의 역사도 모르고 정의감은 잠들고 또는 다분히 기만되어 온 측면이 있다.
김대중 정부 때 김한길 문공부장관은 국화꽃으로 한껏 장식된 서정주의 영정앞에 국가최고의 문화훈장을 바쳤다. 문화훈장이 개똥 훈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90년대초의 국정교과서 개편 때 서정주의 시는 약 40년만에 한 심사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사라졌다. 그렇지만 검인정 교과서에는 여전히 남아 있고, 문인들의 시랑송회에서 그의 <국화옆에서>는 아마도 최고의 인기품목이 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 그의 고향에는 반대를 무릅쓰고 세워진 커다란 문학관과 함께 국화의 계절이 되면 온 동네가 국화밭이 되고 집의 담벼락들까지 국화그림으로 도배되고 마치 성지순례하듯 문인단체와 학생단체들이 몰려 간다.
그리고 서정주문학상이 서정주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상으로 막강한 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있다. 이런 모든 일이 혹시 조금이라도 진실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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