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에 비해 나무는 ‘니그린’이라는 목질부를 만들어 자신의 키를 높였다. 죽은 세포를 나무 몸속으로 밀어 넣고 쌓아, 같은 면적에 높낮이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튼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나무는 지구생태계 순환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남다르게 되었다. 키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은 숲이 3차원 공간을 만들어 다층적인 숲 구조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숲은 큰나무(교목), 중간키나무(아교목), 작은나무(관목), 덩굴성식물, 야생들꽃 들이 층층이 위치를 달리하며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이다.
나무는 시간이 자라면 점차 키가 커진다. 세계에서 제일 키가 큰 나무는 ‘세콰이어’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서부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자라는데 높이가 82.4m이고 밑둥치 최대 직경이 11.06m라 한다. 그 우람한 덩치와 생명은 인간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존재감이자 인간의 경외대상이 되어왔다.
나무는 그 크기가 클수록 우리에게 수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지만 모든 나무가 키가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나무가 커질수록 불안하고 공포스런 존재도 있다. 아까시나무, 은사시나무, 히말라야시다 등이 그런 나무들이다.
물금취수장 옆에 있는, 오래 묵은 '히말라야시다' 가로수. ⓒ이동고
아까시나무는 산을 망친다는 오명을 가진 나무였다. 물론 산소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묘 근처 에 들어오는 나무라 부정적 인상이 들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지만 아까시나무가 가진 이득마저 내팽개치면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콩과식물이 다 그렇지만 척박한 토양을 질소 동화작용을 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걸구어 주고 민둥산을 급속히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꿀이 많아 양봉업자는 아까시나무가 꽃을 피는 시간을 따라 올라가며 꿀을 딴다. 나무를 없앤다고 원래 나무를 자르면 그 옆 땅속줄기에서 맹아가 자라나는 힘이 강해 금세 이웃 땅으로 퍼져나갔지만 역시 뿌리가 깊지 못해 어느 정도 커지면 숲에서 쓰러져 스스로 도태되었다. 척박한 땅을 걸구고 스스로 물러서는 마음 좋은 나무였다. 이 걸구진 숲으로 때죽나무, 산벚나무, 비목나무 등이 들어오게 된다.
은사시나무는 빨리 자라니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많이도 심었지만 미루나무처럼 일회용 젓가락이나 성냥개비를 만드는 역할 밖에 못했다. 은사시나무를 판재로 켜서 그늘에 말려 본 적이 있는데 그 뒤틀림을 막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재질이 물러 땔감으로도 별 쓸모가 없었다. 빨리 자라는 나무치고 쓸모 많은 나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산 아래 허연 나무껍질로 눈에 잘 띄는 이 나무도 돌풍에 그리 쉽사리 쓰러지는 나무였다.
히말라야시다는 과거 박정희 시대에 많이 심어 왔다. 나무 재질이 유난히 좋거나 조경적인 느낌이 아주 좋아서 심었다기보다는 최고 권력자가 대구사범학교 시절 그 나무 아래서 책을 읽은 추억이 곳곳에 심는 이유가 된 나무다. 가지가 치렁치렁하게 처져서 자주 잘라줘야 하고 겨울에는 짙은 녹색으로 칙칙하다. 오래된 관공서 건물, 문화유적지, 학교 등 주요 공공건물 에는 이 나무가 빠지지 않고 심어져 있다. 특히 대구지역은 이 히말라야시다 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주요 가로수 역할을 한 적이 있다. 히말라야시다는 히말라야(설산)+시다(침엽수)로 이뤄진 합성어다. 북한은 설송(雪松)이라 부른다고 하니 우리 ‘개잎갈나무’보다는 뜻을 잘 살린 편이다. 암반으로 이뤄진 산에서 자라니 뿌리가 옆으로만 뻗으면서 나무끼리 그 뿌리 얽힘으로 덩치를 지탱하던 나무였는데 가로수로 심었으니 문제가 많이 생겼다.
히말라야시다는 자주 가지치기를 하고 버팀목을 대는 등 관리에 무척이나 신경을 썼으나 2003년 9월 매미 태풍에 대부분 무참히 쓰러져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동대구로에는 아직 도시 상징이라고 가지를 바짝 자른 이 히말라야시다나무를 가로수로 관리하고 있다.
태풍 때마다 불안불안해서 큰 은사시나무를 베어 넘겨 본 적이 있다. 야산이라면 그 나무를 넘어지는 방향만 잘 잡아 엔진톱으로 그냥 베어 버리면 끝난다. 하지만 사람과 같이 사는 공간이라면 넘어지는 순간 주변 집이나 나무들이 피해를 본다. 먼저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가지를 잘라 몸체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두세 등분으로 잘라 넘기는 방식으로 없애는 수밖에 없다. 물론 자른 나무가 원하는 방향으로 넘어지도록 아래에서 줄을 걸어 추락 속도를 줄여야 한다.
모든 나무가 다 커지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 나무나 가로수로 심어선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오래전에는 최고권력자가 좋아하는 나무라고 생태나 미적 고려도 없이, 무조건 심던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처구니 없던 시절이었다. 큰 나무라도 모든 건 뿌리에 해당하는 민의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그를 저버리면 마지막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드는 시절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 좋고 열매가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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